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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21, 2020

“120년 호남 근현대사 겪어온 충장로 상인들 이야기 펴냈어요” - 한겨레

juraganluempang.blogspot.com
[짬] 광주 충장상인회 여근수 회장
광주 충장상인회 회장인 여근수 거북이안경 대표.
광주 충장상인회 회장인 여근수 거북이안경 대표.
광주 충장로를 지켜온 상인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됐다. 사단법인 충장상인회는 최근 충장로-오래된 가게>를 펴냈다. 충장로 1가에서 누문동 144번지까지 1093m의 도로 양편엔 2000여 곳의 가게들이 있다. 충장상인회는 충장로 4~5가 가게 500여 곳 중 30년 이상된 63곳을 선정했다. 여근수(71) 충장상인회 회장은 “지난해 ‘오래된 가게’라고 적힌 동판을 제작해 가게 앞 도로에 내걸고 이번에 가게의 연혁 등을 인터뷰해 책으로 묶었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서점 ‘소년의 서’ 운영자 임인자 작가와 황지운씨가 글을 썼고, 사진은 최성욱 다큐 감독과 강철씨가 담당했다. 1905년 이래 1Km 거리에 2천여 가게
“일본인 1~3가 본정통·조선인 4·5가”
500곳 중 30년 넘은 63곳 선정해 ‘동판’
구술·사진집 ‘충장로-오래된 가게’ 엮어
1946년 개업 전남의과기제작소 ‘최고령’
“소비·제조·역사·물류·문화 중심지”
광주 충장로에서 30년 넘게 운영중인 가게 63곳의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다.
광주 충장로에서 30년 넘게 운영중인 가게 63곳의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다.
1960년대 광주 충장로 영안잡화점. 광주 동구청 제공
1960년대 광주 충장로 영안잡화점. 광주 동구청 제공
1970년대 광주 충장로 거리. 광주 동구청 제공
1970년대 광주 충장로 거리. 광주 동구청 제공
전남 곡성 출신으로 1982년부터 거북이안경을 열고 있는 여 회장은 한때 광학렌즈 공장까지 운영하며 호남 최대 안경렌즈 도매점 주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은 렌즈 도매업과 안경 소매업을 이어받은 두 아들에게 자문하는 노릇을 하고 있다. “렌즈 거래업체들을 신용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놓았던 ‘관리장부’를 장남에게 넘겨 줬어요. 영업 노하우가 담긴 비밀장부지요.” 충장로 4~5가에 오래된 가게가 많은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05년부터 일본 상인들이 ‘본정통’이라 불렸던 충장로 1~3가에 상점들을 차렸고, 조선인 상인들은 4~5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조선인 가게에선 “비단·무명베 등의 옷감과 옷장이나 이불장, 고무신, 쌀, 어묵 등을 취급했다.”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성공한 최선진씨가 1935년 설립한 광주극장은 지금까지 85년의 세월을 지키며 문화적 상징공간이 됐다. 전남의과기제작소(현 전남의료기상사)는 충장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다. 김우평(70) 대표의 선친 김상순씨가 1946년 의료기를 만드는 제작소를 차렸다. 의료기기업체로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창업한 곳이다. 유리 주사기, 온도계와 체온계를 개발했고, 습도계 특허도 받았다. 한양대 공대 출신인 김 대표는 1991년부터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60년부터 2대째 운영 중인 한양모사, 55년간 한자리를 지킨 시계점 백광당과 이불집 이브자리도 터줏대감들이다.
충장로에서 가장 오래된 전남의과기제작소의 김우평 대표.
충장로에서 가장 오래된 전남의과기제작소의 김우평 대표.
충장로는 “소비의 공간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생산의 공간”이기도 하다. 전병원 충장로-오래된 가게> 편집위원장은 “충장로 4~5가는 한복·양복·양장·양화·귀금속·안경 등 많은 제조업 장인들의 터전”이라고 말했다. 전 편집위원장은 2014년 호남 최초로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의 자리에 오른 전병원양복점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숯다리미와 철다리미, 재봉틀 등양복 관련 도구들을 전시하는 유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충장로-오래된 가게> 편집위원장을 맡은 전병원양복점 대표.
충장로-오래된 가게> 편집위원장을 맡은 전병원양복점 대표.
충장로 한복집·포목점의 역사는 깊다. 1930년대 광주에 ‘종연방직’(일명 가네보)이라는 면방직공장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방 이후에도 4~5가엔 특히 양복점·양장점·잡화점 등이 활성화됐다. 광주 첫 양장점은 충장로 모나미 양장점(1955년)이다. 고 이화성 호남대 설립자는 1960년 충장로 3가에 미모사 양장점을 열었다. 1965년 문을 연 도미패션 정옥순 대표는 “양장 맞춤시대를 이끌어갔던 1세대 광주 패션계의 증인”이다. 충장로는 근현대사를 목격한 공간이기도 하다. 충장로는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딴 것으로, 1947년부터 거리 이름이 됐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이 충돌한 곳이 본정 4~5가였고, 1963년 군정 연장 반대시위가 열렸던 곳도 충장로였다. 충장로는 5·18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현장이기도 하다. 노틀담 제화점 임종찬 대표는 80년 5월 계엄군이 물러간 뒤 시민군 거점이었던 도청으로 매일 나갔다. 끝까지 도청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충장로는 1980년~90년대까지 호남 물류의 중심으로, 하루 20만명이 찾는 패션과 상업의 거리였다. 하지만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충장로 4~5가 상권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동구청은 상인들과 힘을 모아 간판에 타이머를 설치해 밤 10시까지 상가를 환하게 밝히고, 금은 공방 20곳이 있는 ‘도깨비 골목’을 정비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광주의 자부심인 충장로 상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장인 정신과 기술을 계승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4s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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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1, 2020 at 03:3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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